우난순의 식탐
2024-04-17
대전에서 군산을 가려면 익산역에서 환승해야 한다. 익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침을 먹었다. 떡 세 개, 찐계란, 딸기. 기차에서 먹으려다 쿨쿨 자느라 그새를 놓쳤다. 일어나자마자 밥솥에 찐 떡이 말랑말랑했다. 계란, 딸기까지 먹고 나니 허기가 가셨다. 곱게 단장..
2024-03-27
대전 중구 예술가의 집 근처에 김치찌개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 김치찌개는 밥집의 기본 메뉴다. 흔하디 흔한 김치찌개. 하지만 내가 먹어본 김치찌개 중 이곳이 단연 으뜸이다. 나름 분석하자면 육수 때문인 것 같다. TV 프로 '생활의 달인'의 식당들은 하나같이 육수가 남..
2024-02-28
그 식당을 지날 때마다 한번씩 기웃거렸다. 이번엔 문을 쓱 열고 들어갔다. 식당 상호는 딱히 없다. 그냥 '튀르키예 케밥'. 외국음식 식당은 다 그렇다. 베트남 쌀국수, 네팔 요리. 손님은 중년여성들 한 팀과 아랍인 젊은 여성 한 사람. 종업원인 듯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2024-01-17
평일인데도 손님이 많았습니다. 이 분식집은 주말엔 자리가 없어 밖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서는 곳이에요. 지지난주 오전 일을 끝내고 대흥동에 볼일이 있어 서둘러 시내로 갔지요. 일을 마치고 중앙로 지하상가에 있는 그 분식집으로 들어갔어요. 도대체 얼마나 맛있을까 궁금했거든..
2023-12-27
나는 여행지를 음식으로 기억한다. 부산 돼지국밥, 제주도 몸국, 통영 꿀빵·물메기탕 그리고 여수는 갓김치. 갓김치의 강렬한 첫맛을 못잊어 여수에 갈 때마다 향일암부터 찾는다. 올 겨울 첫 북극한파라더니 여수도 만만찮았다. 중무장을 했는데도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향일..
2023-12-06
'인정이 몹시 그리워지는 어느날 나는 남장(男裝)을 하고 거리에 나섰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나는 소설의 이 매혹적인 첫 문장을 떠올린다. 그것은 의도적이지 않다. 그저 몸으로 체득한 강렬한 경험의 기억같은 것이랄까. 나는 초록색 아망구를 푹 눌러쓰고 플라타너스..
2023-11-15
1996년 봄 다니던 직장을 미련없이 때려치웠다. 얼마 안되는 퇴직금이 내 손에 쥐여졌다. 미래에 대한 계획은 안갯속이었다. 그래도 후련했다. 초여름 어느날, 피자가 확 당겼다. 당시 피자집은 '피자 헛' 하나였다. 오류동 미성스포츠 건물(현재 중도일보 건물) 1층에..
2023-10-25
추석 연휴 전날 밤 좀 춥게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자 대번에 목이 쎄에 했다. 시골 집에서 내내 콜록거리고 콧물을 흘렸다. 결국 노란 코가 나오는 걸 보고 심상찮다 생각했다. 대전에 와 병원에 갔더니 비염과 축농증이 같이 왔다며 항생제를 처방했다. 오래전 축농증으로 호되..
2023-09-13
아주 오랜만에 아구찜을 먹었다. 편집국장이 이사 승진으로 데스크들한테 한 턱을 낸 것이다. 회사 앞 길 건너 아구찜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자그마한데 손님이 많았다. 푸짐한 아구찜이 나오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접시에 덜어 큼지막한 살덩이를 입에 넣었다. 오, 잊을..
2023-08-23
여름은 과일의 천국이다. 복숭아, 참외, 자두, 멜론, 수박, 포도. 여기에 수입산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도 빠질 수 없다. 더위에 지쳐 입맛이 없을 때 과일은 식욕을 돋우고 몸에 생기를 준다. 새콤달콤한 자두와 꿀같은 멜론, 달콤한 향이 일품인 황도와 물이 많은 수..
2023-08-02
요란한 새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들의 지저귐이 알람 역할을 한다. 기지개를 켜고 안경을 집어 쓴다. 자 이제 또 뛰어볼까? 주방에서 거실로, 베란다로, 안방으로, 건넌방으로, 욕실로. 나의 부산한 아침 풍경이다. 먼저 TV 뉴스를 틀고 냉장고를 열어 수제 요거트를 꺼..
2023-07-12
10여년 전 초여름에 거문도에 갈 기회가 있었다. 지인 소개로 여행사 팸투어에 따라 나서게 된 것이다. 내내 가고 싶었던 섬이어서 휘파람을 불며 배낭을 꾸렸다. 오래 전 난 거문도를 38선 바로 아래 백령도 근처 어디 쯤에 있는 섬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해에 있다..
2023-06-14
재작년 1월 설을 앞두고 편지 한통을 받았다. 발신인은 대덕구에 주소를 둔 황수남이라고 했다. 모르는 사람인데 누굴까? 봉투를 뜯어 편지지를 꺼내 읽었다. 첫 문장은 '나는 80세가 넘는 나이의 중도일보를 구독하고 있는 대전의 변두리에 사는 사람입니다'라고 시작했다...
2023-05-10
10여년 전 점심에 회사 사람 몇이서 대흥동에 있는 식당에 갔다. 회사 동료 지인이 밥을 산다길래 줄래줄래 따라간 거였다. 냉면이 나왔다. 애걔걔, 양이 왜이리 적어? 이건 애피타이저 수준인데? 젓가락으로 서너번 건지니까 국물만 남았다. 간에 기별도 안가는 냉면이 야속..
2023-04-19
코로나 19가 한국에 상륙한 그 해 봄, 대전 지하상가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뉴스에 그 곳은 한동안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다. 방역요원들이 부랴부랴 소독하고 시민들은 혹시 나도 감염되지 않았을까 공포에 떨었다. 올 봄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가 넘친다. 나는 휴일에 딱..
2023-03-29
국제상품시장에서 석유 다음으로 많이 거래되는 커피. 인류의 커피사랑은 지독하다. 조선말 고종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가베'를 맛보고 홀딱 반해 커피 애호가가 됐다. 발자크의 커피 사랑은 단순하지 않다. 발자크는 하루 18시간 동안 글을 썼다. 그는 미친 듯이..
2023-03-08
누구는 한다, 누구는 안한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지. 한참 헤맨 끝에 동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굴 수협에 문의해 보란다. 굴 작업장이 문을 열었단다. 휴우. 통영 서문시장에서 민진마을까지 걸어서 30분이랬는데 1시간 걸렸다. 딱 그 짝이다. 쫌만 가면 됩니더. '석화..
2023-02-15
겨울이 오면 으레 동네 골목엔 붕어빵 장수가 있다. 고소한 냄새를 풍겨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들던 붕어빵. 단돈 천원에 4~5개로 이것만 먹어도 뱃속이 든든했다. 며칠 전 동네 마트 뒤 후미진 골목에 붕어빵 장수가 있는 걸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붕어빵 천원..
2023-01-11
SBS 장수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는 재미나고 특이한 소재를 다룬다. 그 중 특별한 식성의 소유자들은 볼 때마다 놀랍다. 음료수·국·짜장면 등 모든 음식에 고추장을 들이부어 먹는 남자, 멀미약을 하루에 스무병 이상 먹는 할머니, 밥에 설탕을 듬뿍 몇 수저 넣어서..
2022-12-21
지하철에 올라타자 훈기가 돌았다. 역에 정차할 때마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부산에 왔다는 게 실감났다. 새벽기차를 타고 오느라 일찍 일어난 탓에 졸음이 쏟아졌다. 휴대폰에 얼굴을 박고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깜박 잠이 든 모양..
2022-11-30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갑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도 만만찮다. 바싹 마른 가랑잎들이 바람에 버석거린다. 바지 속에 레깅스를 입고 올걸 그랬나? 배낭의 허리 끈을 바짝 조여매고 한 발 한 발 올라간다. 금요일이라 사람이 없어 숲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햇..
2022-11-09
'달달 보름달 삼립빵의 보름달 새로나온 보름달 카스테라 보름달~.' 1970년대 중반에 나온 '보름달'은 빵의 신세계였다. 흑백 TV에서 나오는 '보름달' 광고를 보면서 무슨 맛일까 골똘히 상상하곤 했다. 학교에서 무상으로 나눠준 둥근 갈색 빵은 단맛도 없고 뻣뻣했지만..
2022-10-05
지난 봄 보문산에 갔다 내려오던 중 대사초등학교 뒤 비탈에서 아주머니들이 뭘 뜯고 있는 걸 봤다. 그 곳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온통 무성하게 자란 쑥밭이었다. 아주머니들은 높이 자란 줄기 끝 연한 쑥만 부지런히 땄다. 며칠 후면 '곡우'라 쑥떡을 해먹을 참이란다...
2022-09-07
결국 그 놈이 왔다. 처음엔 냉방병인가 했다. 온 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열도 나도 머리도 아프고. 아침에 일어나 혹시 몰라서 검사를 했다. 음성이었다. 연차를 내고 쉬었지만 몸살기는 여전했다. 다음날 아침에 또 검사했지만 음성. 안되겠다 싶어 병원에 갔더니 양성이란다...
2022-08-17
비온 후 푹신한 낙엽 밟는 느낌이 좋다. 물기 머금은 눅눅한 냄새. 소나무에서 조청처럼 흐르면서 굳은 송진 냄새가 확 풍긴다. 전날까지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뚝 그치고 푸른 하늘엔 목화송이 같은 구름이 떠다닌다. 시루봉이 가까워온다. 끈적한 땀이 온 몸에 달라붙자 날파..